Today's Letter/2권. 우주대스타 공지철, 버드나무 이야기

그녀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2024/12/13 01:50:16

이옥수2024 2025. 2. 22. 11:02

 

지철님,

 

지철님은 이 시간 주무시고 계시겠네요.

저는 어제 밤 9시 좀 넘어 일찍 잤는데 한밤 중에 깼어요.

 

이리 저리 뒤척이다 불 켜고 유투브를 봤는데 아래 영상이 뜨더라구요.

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인데 짧고 편히 들을 수 있어서 링크 가져와 봤어요.

 

노벨 문학상 한강 수상 소감

 

 

시국이 하 수상하지만 않으면 스포트라이트를 더 받을테지만 왠지 어수선한 가운데 그녀의 성취에 사람들이 별로 관심 갖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 한강도 어릴 적 비내리는 날의 추억이 있었구나/'

 

그녀의 수상 소감을 들으며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던 게 저의 어릴 적 추억이 떠올랐거든요.

그녀는 많은 이들과 함께 비오는 날을 나누는 경험이었지만 저는 그 때 완전히 홀로였어요.

 

제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인지 후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제 집 앞에는 커다란 놀이터가 있었어요. 거기서 동네 애들과 혹은 언니들과 뛰어 놀곤 했는데

그 날은 아무도 없고 그 넓다란 곳에 저 혼자였어요.

 

비가 많이 오던 날로 기억되는데 오직 짤막한 기억의 단편인데 

저는 미끄럼틀로 내려오는 맨 위 조그맣고 네모난 공간에 우산을 쓰고 홀로 쪼그리고 앉아 있어요.

우산을 펴들때 그 공간이 꽉 차는게 꼭 저의 작은 집 같았어요.

 

그 때의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가 참 힘든데,

 

바깥 세상은 엄청나게 비가 쏟아지는데 저만 홀로 그 집안에서 안락하게 비를 맞지 않고 있는게

나만의 공간이 너무도 아늑하고 좋고 그랬어요.

 

그 이후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저는 비오는 날만 되면 우산을 쓰고 있어서

이 세상에 흩뿌려지는 이 빗줄기들에게 몸을 맞지 않지만, 그 빗방울 하나하나가 모두 저를

감싸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마치 우리 집 공간에 머물면서 느끼는 아늑한 느낌이 비 오는 이 세상 전체로 확대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한강은 비 오는 날 광경을 공유하면서 수많은 1인칭 시점을 경험하는 경이로운 순간이라고 하는데

저는 그 때 그 드넓은 놀이터에서 홀로였기 때문에 오직 내리는 빗줄기와 제 그 순간을 공유했기

때문에 비오는 날이 더욱 좋아진 건지도 모르겠어요.

 

빗방울 하나 하나가 제 조그만 우산 밖으로 흘러 떨어지면서 어린 저를 보고

'음, 너니, 너구나.'하면서 말을 걸어온 순간 아니었을까요.

 

제 삶의 구비구비 고통과 상처의 순간을 지나면서 어쩌면 저는 어릴적 그 독립적으고 아늑하고

Serene한 순간을 영원토록 느끼고 지속시키고 싶어 안달하며 살았는지도 모르겠어요.

 

Independence와 Serenity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의 하나라 말씀드린 적이 있나요.

 

우리는 모두 행복한 순간을 꿈꾸며 살텐데, 사람마다 행복하고 아늑했던 순간은 다른 것 같아요.

지철님이 어릴 적 행복하고 아늑하셨던 순간은 언제일까요.

지철님도 어릴적 한강님이나 저처럼 비오는 날 어느 한 순간이 삶에서 가장 경이로운 순간으로 삶의

책갈피에 꽃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지철님이 저란 존재를 이해하기 더 편하실 테니까. :)

저도 한강님의 표현처럼 '언어의 실을 따라 또다른 마음 속 깊이로 들어가 또다른 내면과의 만남'을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지금 읽고 있는 책들 마저 다 읽고 한감님의 소설들을 한번 읽어봐야 겠어요.

전 제가 시처럼 짧은 호흡이 아닌 긴 호흡의 책을 읽는 거, 활자 들여다 보는 거 귀찮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책을 펼쳐 읽어보니, 이렇게 글을 술술 써내려가는 것처럼 글도 술술 읽혀지더라구요.

한참을 책 안 읽고 살았었는데..

 

사실 픽션보다는 수필이나 고전의 논픽션을 더 좋아하긴 해요.

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가 좋고

드라마보다는 인간극장 그런게 더 끌리고 그런건 있거든요.

 

허구의 상상력으로 구현된 세계를 앞서는

순간 순간마다 느껴지는 그 모든 감정들과 생각들과

경험들이 소소하지만 어쩔 땐 더 경이롭게 느껴지거든요.

 

그래도 우리 한강님이 소설만큼은 이 겨울이 지나기 전 읽어봐야 겠어요.

지철님이 나오시는 드라마와 영화도 함께. ㅎㅎ

벽난로 램프를 옆에 켜두고. ㅎㅎ

 

그럼 편히 주무시고 오늘도 순간 순간 충만히, 아셨죠?

 

그럼 또 뵈요.

 

누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