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지철님의 2016년작 영화 남과 여를 보았습니다.
상민과 기홍은 결국 이어지지는 않았네요.
저는 처음 핀란드에서 아들을 캠프로 데려가는 상민의 얼굴을 보면서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전도연이겠구나 생각했어요. 전도연의 담배피는 일상적이고 평면적인 얼굴은 영화 장면장면이 지극히 우리 현실에서 일어날법한 일상의 이야기처럼 흡인력을 주는 힘이 있다는 걸 느꼈거든요. 지독히도 피곤하고 지쳐보이는 상민의 모습에서 저도 모르게 처음부터 상민의 세계속으로 빠져들어가 상민의 관점에서 영화를 바라보게 된 것이죠. 제가 같은 여자여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상민과 기홍은 유독 영화에서 잠이 드는 모습이 많네요. 상민이 핀란드 오두막에서 벽에 기대 잠드는 것도 그렇고 기홍이 상민을 따라 기차타고 가다가 잠드는 것도 그렇고 상민을 기다리며 차안에서 잠든 기홍의 모습도 그렇고. 그들의 삶이 엄청 피곤하고 지쳐 있었다는 반증이겠죠.
정신질환자를 가족으로 두었던 저의 경험에 비추어볼때 각각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가족이 있는 상민과 기홍의 끌림이 충분히 이해가 갔어요. 가족으로서 함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일상에 침투해있는 그 순간 순간의 절망과 공포, 어쩔 수 없는 무력감 등 그 고통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거거든요. 그들의 두 세계는 공통점이 있었던 거죠. 핀란드 설원 오두막에서 잠든 상민의 얼굴을 낯선 기홍이 대담하게 쓰다듬어 줄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인지도 몰라요. 그녀의 지친 얼굴에서 그냥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라는 걸 기홍은 본능적으로 느낀 건 아닐까.
기홍은 따뜻한 사람같아요. 용기를 내어 잠든 상민을 따뜻한 손길로 위로해주었으니까. 먼저 마음을 연 것은 기홍이었던거죠. 오두막에서의 낯선 그 둘의 육체적 사랑은 그들의 가까운 사람들 그 누구도 해줄 수 없던 정신적 위로였다고 생각합니다. 낯선 사람과의 육체적 교류로 정신적 위로를 받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누군가로부터 대화보다는 서로의 몸을 아껴주며 말없는 진정한 위로가 필요했던 건 아니었을까. 사회적 통념으로 그들의 사랑을 일상의 일탈과 불륜으로 단순히 단정짓기에는 그들의 삶의 고통이 너무 큰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어요.
저는 북유럽 핀란드를 가본적은 없지만 동유럽에서 잠깐 산 적은 있는데 해외에 있는다는 건 진짜 사람을 발가벗겨놔요. 뭐랄까 자신의 근원적 공포와 맞닿는다고 할까. 눈도 푸르고 이질적인 언어를 쓰고 이질적인 세계속에 매일매일 던져진 자신을 보면 마치 어릴적 간난아기의 모습으로 낯선 세상에 내동댕이쳐진 기분이에요. 물로 잘 적응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는 많이 움츠러들고 쪼그라들고 그랬어요.
그런 일상의 두려움속에서 처음 핀란드에서 만났을 때 담배를 빌리려 상민이 기홍에게 영어로 말을 걸지만 기홍은 상민이 한국인인걸 금방 알아채죠. 외국에서 한국인을 발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로가 될 때가 있어요. 그들이 첫 만남에서 너무 쉽게 사랑을 나누는 걸 이해 못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낯선 이국땅에서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던 갑작스런 그들의 끌림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어요.
계속되는 엇갈림 속에서 위로를 주고 위로를 받으며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으며 결국은 이어지지 못한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상민은 결국 이혼을 택했고 핀란드까지 가서 기홍과의 추억의 장소들을 가게 되는데 그렇게까지 기홍을 향해 상민이 용기낼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에 있을 때 호텔에서 침대 위에 앉아 있던 상민을 대하는 기홍의 모습 때문인거 같아요. 제 기억으로는 기홍이 상민을 향해 무릎을 굻고 상민의 다리를 애무해주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경건하게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마치 의식을 치루듯 말이죠. 만날때마다 기홍은 마음이 닫혀있는 상민을 향해 두려움 없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대하잖아요. 그런 사람은 잊을 수 없죠.
저는 그들의 관계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은 상민은 지금 어디서도 당차게 잘 살고 있을 것 같은데 기홍이 좀 걱정이네요. 마지막에 핀란드에서 태기를 타고 가는 상민이를 쫓아가지 못하고 부인과 딸과 함께 자신의 차를 타고 가며 상민의 택시를 지나치는 기홍의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느 일그러진 얼굴이 좀 걱정이 되요. 기홍은 그 후에도 많이 방황하고 일상을 잘 살지 못할 것 같아요. 불쌍한 기홍.
기홍이가 잊지 말았음 좋겠네. 당신은 열린 마음으로 상민의 우주를 먼저 열어줬고, 그 충만한 사랑으로 상민은 충분한 위로를 받았고 그녀는 잘 살고 있다고, 걱정말라고. 당신들이 사랑은 충분히 아름다웠다고.
기홍이가 자책하며 살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많은 베드신이 있었지만 격정적이지 않고 한편의 시처럼 서로를 위로 했던 그 순간 순간들을 통해 상민과 기홍은 더욱 성장해 나가겠죠.
첫눈 오는 한편의 아름다운 풍경같은 그들의 잔잔했던 사랑을 응원합니다.
잘봤어요~
누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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