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지철님 오랫만에 인사드리네요.
오늘 많은 기대감으로 넷플릭스 시리즈 '트렁크' 1편과 2편을 보았습니다. 전 처음에 일주일에 한 편씩 나오는 줄 알고 1편만 보고 좀 쉬었는데 또 2편이 나오더라구요. 아 일주일에 두 편씩 나오나보다 했는데 또 3편 다음회가 나와서 목록을 보니 8편까지 다 나왔더라구요.
2편까지 보고 고민에 빠졌었습니다. 여기까지 보고 글을 쓸 것이냐 아니면 예전 도꺠비처럼 밤새 다 보고 글을 쓸 것이냐.
물론 밤새서 보는 건 문제가 아닌데 다 보고 글 한편 올릴려니 뭔가 아쉽더라구요. 제가 지철님의 작품을 실시간으로 접한 것은 처음이라 다른 작품들은 몇 년 또는 십몇 년 지난 후 보고 여기에 감상 편지 글을 올렸었는데 8편까지 모조리 다 보고 글 하나 달랑 올리는거가 아끼던 사탕을 다 먹어버린 아이가 단 한마디로 소회를 표현해야 하는 안타까운 심정이 될 것 같아서 트렁크의 미스테리어스한 분위기에 걸맞게 다음 편을 기다리는 이 쫀득 쫀득한 긴장감을 제 글에 담고 싶었습니다.
트렁크를 2편까지 본 제 감상평은...
우리 정원이 너무 불쌍해요.
진짜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우리 정원이 지철님이 연기하신 캐릭터 중 가장 가슴 아프고 도저히 보낼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가정이란 무엇입니까? 결혼이란 무엇입니까?
서로 사랑하는 성이 다른 남녀가 만나 같이 한 집에 살면서 매일 섹스만 하면 그게 결혼입니까? 그 섹스로 둘의 아이를 낳고 그렇게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면 그게 가정입니까?
트렁크란 드라마는 제가 가정과 결혼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했습니다.
우리 정원이는 상처가 많은 어른아이입니다. 베이비 파우더 향이 나는 어린아이가 들고 잠을 청할 법한 작은 귀여운 인형과 함께 6개월의 잠 못 드는 밤을 뒤로 학 단잠을 오랫만에 자서 햇살을 받으며 아침을 맞이 할 수 있는, 성인이 되어서도 귀여운 인형이 어울리는 어른아이입니다.
어릴 적 가정에서 받은 상처란 아이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된 이후에도 상처로 피투성이가 된 채 상처를 보이기 싫어 내면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무릎을 꽉 잡고 아무도 보려 하지 않는 그 아이는 절대 혼자서는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없습니다. 어른아이이니까요. 그에겐 엄마의 보살핌으로 치유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어떤 상처인지는 스포일 수 있어서 여기서 자세한 얘기는 않겠습니다.
그가 어릴 적부터 살았던 그 집은 집 앞 진입금지라고 도로와 표지판이 상징하듯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는 집입니다. 그 집은 겉모양은 예술 작품처럼 곡선의 미를 뽐내며 상류층 집처럼 거대하고 화려하지만 모든 걸 품지 못하고 반사만 하는 마룻 바닥으로 이루어졌더군요.
우리에게 집이란 가정이란 마치 아기를 품고 있는 엄마의 자궁처럼 안온하고 포근한 곳이어야 하는데, 정원의 집은 마치 엄마 자궁이 군데 군데 뚫려저버려 모든 양수가 세서 더 이상 아기가 살 수 없어 비명을 지르며 우는 곳 마냥 모든 곳이 막히지 않고 다 뚫려져 있더군요. 그 집의 바닥은 모든 걸 반사해서 두개로 만들고 그의 침대도 두개고 벽도 두개고 그의 영혼조차 두개로 나누어 버렸더군요. 그 무시무시하고 뾰족뾰족한 거대한 샹들리에는 그의 상처난 어린 영혼을 나이가 들어서도 벗어날 수 없게 사정없이 갈기 갈기 찢어버리는 존재더군요.
정원은 어릴 적 트라우마로 인해 불면증에 걸려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이루는데 이런지 20여년이 됬는데도 그는 이사를 가지 않고 있어요. 엘리베이터의 CCTV가 마치 자기를 감시하는 눈 같아서 자기를 무언가가 감시하는 듯한 강박증을 앓고 있어서 그는 그를 감시하는 눈알이 없는 것처럼 보여 그를 안심시키는 눈알없는 눈매를 닮은 창을 달은 매끈한 차를 타고 다녀요. 안락함을 느끼고 싶어 어린이의 순수함이 느껴지는 하얀색과 어른의 정열이 느껴지는 붉은 색으로 이뤄진 앙증맞은 애기같은 차도 있어요. 차고에 더 많은 외제차가 있는 것 같던데 어떤 심리로 그 차들을 샀는지 그의 차들을 보고 싶어요.
드라마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가슴 아픈 가족사를 실제로 겪은 저에게는 정원을 무려 20여년간 불면증만 앓는 사람으로 묘사하는게 좀 이해가 안갔어요. 불면증은 모든 신경쇠약과 정신병의 시초인데 그는 수면제를 먹어야하는 상태가 아니라, 신경정신과에서 신경안정제를 복용해야 하는 상태이고 클럽에 가서 잠을 청할 것이 아니라 매주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아야 해요. 무시무시한 뿌리로 유년 시절부터 그의 온 영혼을 넝굴채 감싸고 있는 그의 울분과 억압된 감정들을 봇물 터지는 눈물로 쏟아내야 해요.
또한 그의 상처받은 영혼이 치유가 되는 또 다른 길은 어릴적 정상적이고 포근하고 아늑한 가정에서나 있을법한 정원이 받지 못한 엄마의 사랑과 보살핌을 다시 한번 받은 거에요. 성인이 된 후는 더이상 혈육의 엄마가 아니라 결혼한 후의 아내가 되겠지요. 정원에게 있어서 전처 서연은 정원이와 어릴적부터 함께 한 동무같은 존재였고 어른이 된 정원속에 있는 상처받은 아이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외향을 보세요. 따뜻한 감성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는 항상 지적으로 보이지만 어둡고 음침한 검은 정장을 입고 있어요. 검은 색으로 상징되는 그녀의 지성은 결코 아픈 정원을 치유할 수 없어요. 온몸을 떨며 오들대는 상처 입은 정원에게 도움의 손길을 애원하는 정원에게 그녀는 자기가 입은 정장처럼 딱딱하게 한마디 내뱉고 정원을 홀로 남기고 엘리베이터에서 나가버리죠. 당신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그녀에게도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그녀도 누굴 치유할 대상이 아니라 육체적 섹스가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품어줄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건가요?
정원을 여보라고 부르는 그녀는 정원을 구원할 사랑을 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녀도 치유받아야 할 불쌍한 영혼입니다. 그녀가 치유받을 때 그녀는 비로소 지성으로 상징되는 검은 정장이 아니라 감성으로 상징되는 따뜻한 원색의 앙고라털이 복슬복슬난 스웨터를 입을 수 있을겁니다.
자 그런데 여기 정원을 여보라고 부르는 또 다른 여인이 나타났네요. 그녀의 이름은 노인지.
인지하지 못해도 그녀는 아마 노인의 영혼을 지녔을 겁니다. 살면서 모든 걸 경험하고 이미 지혜가 넘쳐 집착이 없는 어느 노인네의 영혼말이에요. 그녀는 아팠어요. 결혼을 앞두고 양성애자 애인에 의해 처참히 상처받았어요. 그녀의 모든 꿈은 무너졌어요. 그러한 그녀는 무표정하게 기간제 결혼으로 1년을 함께 한 남편의 죽음도 보았어요.
다시한번 말하지만 그녀는 집착이 없어요. 사랑도 결혼도 첫사랑도 무참히 짓밟혀지고 상처 받은 그녀는 무려 다섯번이나 결혼을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녀는 그런 상처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따뜻한 원색의 스웨터를 입는 여자에요. 아침 저녁으로 정원을 위해 밥을 차리고 정원을 기다리고, 샹들리에로 상징된느 정원의 트라우마같은 깊은 상처에 기꺼이 다가가 자신도 피를 내며 정원의 고통과 함께 하는, 이 글을 쓰는 저도 전율이 느껴질만큼 착하고 따뜻한 여자에요. 냉정하고 무표정해 보이는 그녀가 정원의 찬장을 뒤지고 물품들을 호기심있게 바라보는데 정원과 상처를 함께 하면서 그들은 Happy Together라는 햄버거집에서 같이 햄버거를 먹고 냉면도 같이 먹어요.
같이 먹는다는 의미는 뭘까요? 처음에 정원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을 땐 그녀와 밥도 먹기 싫어했는데 정원은 두번이나 자연스럽게 인지와 같이 식사를 하고 인지가 기다리는 가정으로 귀가 후 가서 밥을 먹고 싶어해요. 둘은 진정한 식구가 된거에요.
인지는 정원에게는 화려한 외면 뒤에 그 삭막하고 외로운 집에서 홀로 지내는 집에 유일하게 인간적 냄새가 풍겨지는 그 큰 나무같은 존재가 될 거에요.
인지는 정원에게는 나무에요. 뽀족한 샹들리에처럼 온갖 가시에 찔린 피투성이 몽롱한 눈을 한 어른아이 정원이라는 영혼의 새가 유일하게 쉴 수 있는 보드랍고 포근한 나무에요.
가정이란 결혼이란 그런 것 아닐까요. 서로에게 의지가 되주고 아픈 상처를 보듬어주고 정신과 영혼과 육신의 치유자이신 예수님의 사랑처럼 서로 사랑하며 영적 성장을 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할텐데.
기간제 결혼이라는 계약적 사슬을 과감히 끊고 서로에게 진정한 사랑으로 다시 결혼해서 그렇게 나무와 새가 되어 자연속에서 살 수 있는 집으로 이사가면서 막을 내렸으면 좋겠는데, 인지를 스토킹하는 정신병원에서 갓나온 엄태섭이란 인물은 또 뭐며, 정원을 빈껍대기라 모멸하며 정원의 영혼도 돌보아주고 보살펴주지도 않으면서 그저 새 남편이랑 허구헌날 공허한 섹스나 탐닉하고 앉아 있는, 정원의 영혼을 그렇게 자신의 소유물이나 되듯 함부로 취급하며 집착하고 있는 전 부인 서연이며, 이 두 존재와 더불어 그 의심스러운 외향을 한 인지의 어머니로 보이는 빠글빠글 파마를 한 여자며, 도대체 정원과 인지앞에 어떤 험난한 여정이 있을지 가슴 조마조마합니다.
정원과 인지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짓고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일 3편과 4편을 보고 글 다시 올리겠습니다.
지철님의 연기와 서현진님의 연기는 연기가 아닌 정원과 인지 그 자체였어요. 지철님으로 인해 오랫만에 내 영혼의 단비같은 드라마를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온갖 드라마와 영화에서 사랑이 남발되고 있는 이 세태에서 신을 닮은 진정한 사랑을 통해 고통받는 영혼들이 치유되고 성장하며 신의 구원의 역사가 쓰여질 것만 같은 서사를 지닌 트렁크라는 드라마를 소개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물질만능주의와 온갖 향락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하나의 소중한 서사를 지닌 드라마와 한명의 깊이있는 연기를 하는 배우가 어떠한 영향력으로 대중들의 영혼을 흔들고 그들을 일깨울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 영혼을 치유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성직자들은 작가와 감독과 배우와 그를 뒷받침하는 매니지먼트와 나아가 그 모든 스텝들이 아닌가 합니다. 기대감을 품고 다시 오겠습니다.
다시 한번 좋은 작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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