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Letter/1권. 우주대스타 공지철, 내 주머니 속 조약돌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2024/10/18 19:46:25

이옥수2024 2024. 12. 17. 21:34

하루가 끝나면/ 서랍에 저녁을 넣어둔다/ 저녁이 식기 전에/ 나는 퇴근을 한다

 

저녁은 서랍안에서/ 식어가고 있지만/나는 퇴근을 한다/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고

 

서랍에 넣어 둔 저녁은/ 아직도 따뜻하다/ 나는 퇴근을 한다/ 저녁이 식기 전에

 

퇴근을 하면서/ 저녁을 꺼내어/ 따뜻한 한 끼를 먹는다/ 하루의 끝에서

 

퇴근을 하고/ 서랍에 넣어 둔 저녁을 꺼내면/ 하루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나는 퇴근을 한다

 

퇴근을 하면서/ 저녁을 꺼내어/ 따뜻한 한 끼를 먹는다/ 하루의 끝에서

 

-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한강

 

 

퇴근했어요.

오는 길에 지철님 유투브 영상이나 볼까 하다가

최근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한강의 감성과 정서는 어떤것일지 호기심이 생겨

그녀의 옛날 시를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평범하네요.

저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듯한 퇴근 후 의 삶.

 

저도 씻고 저녁을 먹으려고 서랍을 열었는데

서랍에서 꺼낸 저의 저녁은 그녀의 시와는 다르게 좀 무거웠어요.

얼마전에 영상속에서 봤던 대만 팬 미팅 때 지철님의 우는 얼굴이 자꾸 떠올라서요.

고인 상처가 드러난 그 눈망울이 제 가슴속에 박혔나봐요.

걱정은 나의 습관같은 거에요. 한결이가 유주를 대하듯.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 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서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 괜찮아 /한강

 

괜찮은거죠. 이 시처럼 왜 그래라고 묻지는 않을께요

지철님의 기억속에는 이미 과거속에서 사라진 죽은 슬픔일지도 모르는데

제겐 마치 박제된 과거에 심폐소생술을 하듯 제 현실에서는 그 슬픔이 생생히 살아숨쉬네요.

 

지철님의 지난 영상들 보지말까봐요.

소복히 쌓인 눈에 선명하게 난 발자국처럼

하나 하나 그 발자국을 따라 길을 걷는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리 좋은 기분도 아니에요.

시간의 흐름속에서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엇갈리고

서로 만나지 못하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요.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 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 서시/한강

 

내 주머니 속 조약돌같은 지철님을 자꾸 어루만지지 말까봐요.

꽁님이라고 부르며 밝고 활기차게 지철님을 대하는 다른 팬들의 감성이 부러워요.

나만 외딴 섬같은 약간의 소외감도 느끼고.

나도 평범하게 다른 연예인 덕질한 저도 있는데 왜 지철님 앞에서는 이런 모습이 되지.

내 죄를 사해달라며 신부님앞에서 고해성사하듯 지철님 앞에서 떠드는

이 우울하고 무거운 자기 성찰적 정서는 뭘까.

아 너무 많은 걸 느끼고 예민한 내가 싫다.

나도 너무 진지하지 않고

연예인 덕질하듯 가볍게 지철님을 대해보려고 노력해볼까요.

 

 

아프다가

 

담 밑에서

하얀 돌을 보았다

 

오래 때가 묻은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아직 다 둥글어지지 않은 돌

 

좋겠다 너는,

생명이 없어서

 

아무리 들여다봐도

마주 보는 눈이 없다

 

어둑어둑 피 흘림 해가

네 환한 언저리를 에어 싸고

 

나는 손을 뻗지 않았다

무엇에게도

 

아프다가

 

돌아오다가

지워지는 길 위에

쪼그려 앉았다가

 

손을 뻗지 않았다

 

- 조용한 날들/ 한강

 

오늘 한강이란 시인을 만난 건 제게 행운이네요.

일상을 파고들며 존제의 고독을 담담히 말해가는 그녀의 감성이

많은 위로가 되요.

역시 노벨문학상은 괜히 타는 게 아니군요.

 

오늘도 글이 역시 길어졌다. 지철님이 다 읽으실지도 모르겠네.

오늘은 시에서 시작해서 시로 끝나네요.

해 뜨기 전 새벽 감성과 해 질녘 저녁 감성은 제게 몹시 위험한 듯.

조심할께요.

 

그녀의 마지막 시 전해드리고 이만 밥 먹으러 갈께요.

이미 과거로 흘러가 사라져버린

지철님의 눈망울을 위해 건배.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 어느 늦은 저녁 나는 / 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