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교리 '생명의 길'

제14장 세계 교회사

이옥수2024 2025. 1. 25. 19:15

가톨릭 교회(천주교)를 알려면 먼저 세계 교회사를 알아야 한다. 세계 교회사의 주된 흐름을 파악하면 가톨릭과 개신교의 관계, 가톨릭과 정교회(동방 교회)의 관계를 이해하게 되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교회가 한 뿌리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교(기독교)이면서 왜 여러 교회로 갈라졌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1. 사도 시대 초기 교회

 

가톨릭 교회의 역사는 기원후 30년경 유다교 축일인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시자 사도들이 베드로를 중심으로 군중 앞에 나악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면서, 구약의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는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심을 믿은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은 세례를 받고 사도들을 중심으로 사랑과 일치의 교회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유다교 예배에 침례하였기에 예수님을 따르는 유다교 종파 중의 하나로 여겨졌다. 그러나 초기 교회 신자들은 자신들만의 예배, 곧 '말씀 전례'와 '성찬 예배'를 거행하면서, 베드로를 으뜸으로 하는 사도단과 그들을 보좌하는 이들로 공동체를 구성하였다. 이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 곧 구세주로 고백하면서, 주님의 기쁜 소식을 열심히 선포하였다. 이후 나날이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루살렘 밖으로까지 퍼져나갔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이들을 '그리스된'이라 불렀다. 처음에는 주로 유다인들에게 전파되던 그리스도교는 차츰 그리스인, 로마인 등 이방인들에게도 전해졌다. 열두 사도들과 이방인의 사도인 바오로, 그리고 사도들의 세자들의 열성적인 선교 활동으로 로마 제국의 대부분의 도시에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기원 후 70년 예루살렘의 멸망 후에 유다인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쇠퇴하고, 이방인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날로 커져 나갔다.

 

초기 교회 공동체는 유다교의 전통을 어느 정도 따르면서도 나름의 교리와 조직을 갖추게 되었다. 사도들이 세상을 떠나고 2세기로 접어들면서, 주교를 중심으로 하여 장로(사제)와 부제들이 보좌하는 지역 공동체(교회)들이 생기게 되었다. 이 공도엧들은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교리 문제를 해결하면서, 급속도로 로마 제국 안에 퍼져 나갔다. 교회가 성장하자 로마의 황제들은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기 시작해 2세기부터 4세기 초까지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순교하였다.

 

 

2. 신앙 자유 시대의 교회 : 5대 교회의 형성

 

수많은 박해에도 불구하고 성장을 거듭하던 교회는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을 통하여 신앙의 자유를 얻었다. 이후 그리스도교는 로마 제국 황제들의 호의적인 도움으로 제국의 종교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마침내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329년에 포교령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포한다.

 

국교 시대를 맞이하여 그리스도교는 여러 분야에 걸쳐서 발전하게 된다. 이때 수많은 수도원이 창설되어 교회 영성 발전에 기여하였다. 교회는 여러 공의회를 개최해 교계 제도를 정비하고, 신앙생활을 활성화할 전례를 발전시켰다. 또 그리스도론과 삼위일체론 등 여러 교리 논쟁을 해결하여 정통 가톨릭 교리를 정립하였다. 

 

당시 로마 제국 안의 대도시들에 세워진 교회들은 학식과 덕망이 있는 주교들과 학자들의 영향으로 전례와 신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주위의 작은 지역 교회들은 이 큰 교회들로부터 전례와 신학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어느 일정한 지역 전체에 영향을 행사하는 큰 교회들이 생겨났다. 이 교회들을 '총대주교좌교회'라고 불렀다. 5세기 총대주교좌 교회는 로마,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에 있었다. 이 교회들은 서로 협력하면서도 각자 서로 다른 역사를 걸어가면서 발전하였다. 로마를 제외한 동로마 제국 문화권에 속하는 교회를 일반적으로 '동방 교회'라고 불렀다.

 

3. 로마 교회(서방 교회)의 발전

 

5세기 중반, 로마 국경 지대로 게르만족이 이동하면서 로마 제국을 멸망시키자 그리스도교 자체도 부오기할 위기에 처하였다. 교회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본래의 사명인 선교 열의를 잃지 않고 영국에 선교사를 파견하고, 프랑스와 독일 지역의 새 주인으로 등장한 게르만족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

 

이러한 교회의 역할로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권과 게르만 민족이 윻압하여 새로운 중세 문화가 탄생하였다. 유럽의 여러 민족이 고유한 문화적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한 신앙 안에서 일치된 서구 그리스도교 제국을 탄생시키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4. 중세 전기 교회 (750~1054)

 

중세기를 시기별로 구분하는 학문적 견해는 다양하지만 게르만 민족의 이동과 프랑크 왕국과 교황청이 융합되는 시기를 '과도기'(450~750)로 보고, 이후 시작되는 시기를 '중세 전기'(750~1054), 이어지는 시기를 '중세후기'(1054~1300)로 양분할 수 있다.

 

중세 전기에는 프랑크 왕국을 중심으로 서구 그리스도교 제국이 창설되었다. 종교적 입장에서는 그리스도교 교세 확장과 교황령 탄생 등 외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하지만 교횐느 황제의 간섭을 받아 교권이 약화되어 점차 세속화되었다. 교회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던 프랑크 제국이 정치적으로 붕괴함으로써 교회의 권위와 교황의 권한이 쇠퇴하는 암울한 시기를 맞게 된다.

 

이 시기 그리스도교는 처음에는 로마 귀족들의 지배를 받았고,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교회 내정 간섭으로 자율성을 잃게 된다. 아울러 성화상 논쟁으로 동, 서방 교회가 신학적으로 충돌하였고, 교리 논쟁 이후로 서방 라틴 교회와 동방 비잔틴 교회는 각기 다른 노선으로 발전하게 된다. 

 

(1) 성화상 논쟁

 

동방 교회 안에서 5~7세기에 대중 신심으로 성화상 공경이 크게 유행하였다. 동로마 황제와 일부 교회 지도자들은 신자들의 지나친 성화상 공경 신심이 우상 숭배로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성화상 파괴 운동을 120여년 동안 벌였다.(726~843년) 이 때문에 제국 안에서 교회 박해, 폭력 사태, 정치적 혼란 등 사회적 소요가 일어났다.

 

성화상 공경을 찬성하는 서방 고회(로마 교회)와 이를 금지하는 동방 교회 사이에 심각한 논쟁이 벌어졌다. 성화상 논쟁은 843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성화상 공경을 부활시킴으로써 종식되었다.

 

(2) 동, 서방 교회의 결별(대이교 1054년)

 

남부 이탈리아 교회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둘러싸고 로마 교회와 콘스탄티노플 교회 사이에 벌어진 논쟁은 1054년 서로를 파문하는 비극을 도출하였다. 이후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는 1965년 서로의 파문을 철회하고 화해하기까지 결별하였다.

 

5. 중세 후기 교회(1054~1300년)

 

중세 후기 서방 가톨릭 교회는 클뤼니 수도회의 개혁과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의 교회 쇄신으로 세속권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권을 회복할 뿐 아니라 오히려 세속권을 지ㅐ하는 시대에 들어서게 된다. 이러한 개혁 운동은 성직자와 수도자를 각성시켰고, 평신도 영성을 강화시켰다. 이는 11세기에 시작된 십자군 운동과 청빈 운동에서 나타난다. 

 

십자군 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1세기 아라비아인들을 몰아내고 팔레스티나를 점령한 셀주크 투르크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금지하고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또 이들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까지 침공해 함락하려 하였다. 위기에 처한 동로마 제국 알렉시오 1세 황제가 서방 교회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우르바노 2세 교황은 1095년 두 차례의 종교 회의를 개최해 서방 그리스도교 국가에 십자군 운동 동참을 호소하였다. 이때 동방 교회를 돕고자 하는 바람과 이교도로부터 예루살렘 성지를 탈환하려는 열망은 국가와 민족의 장벽을 넘어 서구 세계를 단절시켰다. 십자군 운동은 대중적 종교 운동으로 시작하여 몇 세기 동안 8차례(또는 4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십자군 운동은 성지 회복이라는 순수한 종교적 목적을 위하여 일어났지만, 기사들의 모험심과 귀족드르이 지배욕, 명예욕 등의 세속적 동기도 있었다. 세속적 동기는 비그리스도교적 폭력으로 드러나 십자군  운동을 중세를 대표하는 비극적 사건으로 변질시켰다.

 

하지만 십자군 운동은 서구 사회에 비잔틴, 이슬람 문화를 소개하는 긍정적 역할을 하였다. 특히 스콜라 철학과 신학, 문학과 수학, 의학과 예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쳐 르네상스 시대의 길을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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