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교리 '생명의 길'

제14장 세계 교회사 2

이옥수2024 2025. 1. 27. 07:54

6. 종교 개혁 전야의 교회

 

14-15세기(1300-1500년)에 유럽의 그리스도교 세계는 중앙 집권의 정치 체제 또는 지방 분권호의 정치적 상황으로 단일성을 상실하였다. 또한, 교회는 일련의 대사건 곧 '교황의 아비뇽 유페'와 '서구의 대이교'로 인한 교황권의 약화로 '공의회 우위사상'의 흐름 속에서 이단 운동이 발생하여 대혼란 속에 빠졌다.

 

프랑스인 교황들이 선출되면서 그들이 프랑스 아비뇽에 머무는 70여 년동안(1305-1377)교회는 중심을 잃고 크게 흔들렸다. 교회 쇄신 또한 지지부진하였다. 교황이 로마 교황청으로 되돌아오자 세 명의 교황이 선출 되어 서로 자신을 정통 교황이라고 주장하여 교회 전체가 분열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콘스탄츠 공이회(1414-1417)가 이 문제를 해결하였으나, 후유증은 오래 남게 되었다. 교회는 영성의 쇠퇴, 신학의 퇴보, 쇄신의 실패로 날로 불안전한 상태로 접어들고 있었다.

 

한편, 일반 대중의 신심 생활은 매우 활발하였다. 이는 수많은 성당의 건립, 자선 활동, 신심 서적 보급 확대, 모국어 성경 번역, 묵주 기도, 십자가의 길, 성지 순례 등 새로운 신심의 번창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신심은 개인주의적 성향과 현세적 두려움을 단순히 회피하려는 경향, 물질적 이익 추구와 미신적 요소 등을 담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으로 교회 안에서 비판과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져 갔다.

 

7. 종교 개혁 시대의 교회

 

1517년 10월 31일 독일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수사신부이며 성경학 교수였던 마르틴 루터는 교회의 대사 남용에 대해 항의하면서 대사 교리의 재정립을 제의하는 편지를 그의 교구장과 동료, 교수, 신부에게 보낸다. 이 편지에는 그 유명한 95개 항의 신학 명제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은 가톨릭 정통 신앙을 뿌리째 흔들었고, 서구 그리스도교를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개신교)로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종교 개혁 시대를 열게 한 마르틴 루터와 대사 나묭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자.

 

(1) 마르틴 루터

 

성 아우구스티노회의 수사신부였던 루터는 교회의 대사 남용에 충격을 받고, 1517년 교회의 관습대로 자신의 교구장과 독일의 대사 시행을 책임진 고위 성직자에게 항의 편지와 대사의 남용을 논박하는 '95개 항의신학 명제'를 작성하여 보냄으로써 대사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그리스도교 세계가 분열하는 원인이 되었다. 개신교의 기원을 루터의 종교 개혁에 둔다면 그 출발점은 이 대사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루터는 사목자로서 설교를 통해 대사 교리와 구원론을 설명하면서 대사 설교가들을 비판하고, 신자들에게 대사 남용의 위험을 경고하였다. 그에 의하면, 우리 영혼은 원죄로 인하여 완전히 부패하여 우리 의지로 그 어떤 착한 행위도 할 수 없으므로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덕은 병풍과도 같이 인간의 죄를 덮어 주는 것이므로, 구원을 위해서는 오직 그리스도께 신앙만 있으면 된다고 주장하였다,

 

루터는 고신극기, 선행, 고해성사, 자선,덕행 등이 구원의 조건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구원을 위해서 아무런 조건 없이 그리스도의 자비를 신뢰하는 것만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오직 성경만으로', '오직 은총만으로', '오직 신앙만으로' 구원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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