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철님 저 또 왔어요.
지철님께 편지를 남발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 경각심이 생기는 게 아니라,
의식의 흐름대로 잘 살고 있구나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으면 말하고 싶은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애절하면 애절한대로 말이죠.
지금은 대낮인데
보통 해질 무렵 저녁에 듣던 이 노래를
왜 대낮에 듣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최근엔 이 노래 듣고도 멀쩡했는데
왜 오늘은 예전처럼 마음이 쓰리고 아픈지 모르겠어요.
둘째언니는 동생 집에 가고 없어요.
하루종일 음악 듣다 책 읽다가 블로그하다가
뭐 그랬어요.
하고 싶은 것 맘껏 해서 좋긴 한데
나 이렇게 1년은 못살겠다는 생각이 들던데.
마치 젊을 적 그 눈파란 성직자 분 따라
동유럽 수행 공동체 갔을 때
다른 유럽 아이들은 릴렉스하며
하루하루 편하고 느리게 사는데
오직 저만 쓸고 닦고 하루 한 순간이라도
제 존재의 쓸모가 없는 게 아니라
난 기능을 다하는 존재라는 걸
만천하에 선포라도 하듯이
그렇게 바지런을 떨며
수선을 떨었으니까요.
한국, 서울이라는 대도시 속에서
몇십년을 살았던
그 바쁜 리듬을 이 촌구석에
구현해내지 않으면
내 존재가 내 자아가 촛농처럼
스스로 녹아 없어질 것 같던데.
그리고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그 오랜 유럽 대륙의 장구함 속에서
하루 하루 느린 템포로
그닥 발전도 없이
빠른 현대화도 없이
그렇게 slow life로 살아가는 게 익숙한
유럽애들이 진짜 한심하게 보이던데.
너희들은 꿈이 없는 거니.
뭐 하나 만들어도 일주일이 걸리고
나는 하루면 뚝딱 만들겠던데.
뭐 하나 부탁하면 한달이 걸리고
진짜 그 느려터짐에 복장이 터지고
미치겠던데.
그리니까 유럽 대륙이 발전이 없고
역사속에서 쇠퇴하는 대륙이 되는거야.
한국에 와봐. 그것도 서울.
서울 알지? 다이내믹한 도시.
최첨단의 고층 빌딩, 마천루와
고전의 궁들이 공존하는 곳.
어디 그뿐이니
그 서울이라는 도시에는
엄청난 폭을 자랑하는 한강이 흘러.
파리 세느강은 무슨 시냇물만 하던데
저걸 도시의 강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나마 부다페스트의 강은 나름 넓던데.
야경 하나는 멋지구나.
이렇게 한국인으로서
다이내믹하게 수식상승하며 발전하는 젊은이가
안락의자에 앉아
대제국의 빛바랜 추억을 끌어안고
추억이나 회상하며 사는 어느 늙은이를
경멸하듯 그거기 그렇게 교만하게 살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치기어린
어린애의 마음이었는데
그 영혼이 노인네들인 젊은이들과 함께 살면서
차츰 그들의 느려터짐이 익숙해지고
편안해지면서
나도 발빠른 정열적인 탱고를 추다가
한템포 서서 그들이 다가오길 기다리곤 했는데
그래서 나도 어드 덧
그들처럼 노인네의 영혼으로 다가갔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젊은가봐요, 전.
이렇게 쉬는 때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뭔가 열정적으로 일하고 싶어서
괜히 블로그에 글들을 올려대고
마구 이메일을 돌리고
뭔가 빠른 템포로 살아야 할 것 같아서
이것 저것 스케줄을 다이어리에 적고
뭐 그런 하루였지요.
전 언제쯤 릴렉스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근데 지철님께 자꾸 편지 보내는 건
괜히 바빠보일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진짜 자꾸 생각나서 그래요.
제가 함부로 보고싶다 이런 표현 잘 안하는데
남자한테는 울 아버지랑 지철님께만 하는거니까
영광으로 생각하시고
오늘 하루 알차게 보내세요 아셨죠 ㅎㅎㅎㅎ 농담이에요.
우리 고운 지철님 또 진짜로 생각하실라.
허..아직 치유해야 할 뭔가가 남은 걸까요.
이제 과거의 상처에서도 뭔가 자유롭고
날아갈 듯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이제 내 등에 짊어질 꾸러미는
현재 이순간 오감으로 느끼는 이 모든 것.
아주 가벼운 꽃향과 이 흰 노트북 컴퓨터
그리고 희끄무리하게 빛나는 식물 생장등.
나름 신전 대리석처럼 보이는 흰 식탁.
그리고 몇개의 사과들.
기타 등등 기타 등등 이렇게 가벼운 현재 순간인데
왜 아직 이 노래를 듣는데
마음이 아픈 걸까요?
알다가도 모를 일이에요.
감성의 바다가 마를 때까지 계속
내리쬐듯 햇빛을 쐬어줘야 하나.
그럼 감성의 물줄기는 수증기가 되어
허공을 붕붕 떠다녀서
아주 가벼워져
이 노래를 들어도 하나도 안 감성에 젖을텐데 말이죠.
이런 감성을 춥고 흐른 초겨울의 어느날이지만
태양이 내리쬐는 대낮에 느낄 수 있다는 건
축복일까요 재앙일까요
촉촉한 감성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엇이며
메마른 감성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얼까요.
다른 사람들 다 일하는 시간인데
정확히 1시 11분.
점심 식사 끝나고 졸린 눈으로 사무를 보거나
노동을 하는 시간이겠네요.
그렇지 이것도 삶이지.
그냥 단순히 받아들이면 되겠죠 뭐.
릴렉스하는 법을 더 배워야겠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여유.
좋네요.
지철님,
제가 또 저녁감성에 젖어서 또 편지를 쓸지도 모르는데
아마 저녁 되기전 언니가 돌아올테니까
눈치보여서 못 쓸 수도 있어요. ㅎㅎㅎ
로미오,
이 줄리엣은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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