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네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은 최후 만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최후 만찬 자리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임박한 당신 수난의 의미를 제자들에게 명백히 설명하셨다. 하지만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 후까지도 그 말씀의 뜻을 알아듣지 못하였다.(루카 24,26)
최후 만찬은 그리스도께서 곧 바치실 십자가의 제사를 미리 앞당겨 상징적으로 하느님께 바친 제사이다. 그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를 세우셨고, 성체성자를 집행할 '사제직'(성품성사)도 세우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새롭고 영원한 계약이 맺어진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마태 26,26-28)
최후 만찬이 끝나자,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과 함께 올리브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고, 곧 닥칠 수난에 대해 마음이 흔들리셨으나 결국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자 하셨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라고 기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사제들, 헤로데, 빌라도 앞에서 부당한 재판을 받으셨다. 이 재판을 받으시면서 심한 모욕을 당하셨다. 또 베드로는 그분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였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는 극심한 육체적 고통으로 받으셨을 뿐만 아니라 고독과 처량함을 느끼셨고, 어머니 마리아께서 한량없이 슬퍼하시는 모습을 친견하는 괴로움까지 겪으셨다. 그러나 우리 구원의 대사제이신 예수님께서는 인내와 위대한 정신을 잃지 않으셨다.
이렇게 십자가에서 죽어 가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동안 경험하는 여러 가지 고통과 비애를 예수님께서는 그대로 받아들이시고, 더욱이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영광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5. 수난과 죽음의 의미
예수님께서 받으신 수난의 결과는 영원하다. 주님의 수난을 통해서 사람은 죄의 모든 결과에서 구원을 받았으며,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 은총을 모두 받게 되었다. 죄가 인간 위에 군림하였고(로마 5,21), 인간을 노예화하였다.(로마 6,7) 그러나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사람은 이제 죄를 용서받고 속박에서 풀려났으며(콜로 1,13-14)사탄도 정복되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억누르던 율법의 멍에도 없애셨다. 율법은 거룩한 것이긴 하였으나 생명을 주지는 못하였다. 율법은 죄를 피할 의무를 가르치면서도, 그렇게 할 힘을 쥦는 못하였기 때문이다.(로마7,7-25) 육체의 죽음까지도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정복되었다(1코린15,54-57). 이제 모든 죽음은 비극적 불행이 아니라 사랑의 절정이며 새 생명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의 수난은 성부의 사랑을 드러낸다. 하느남 아버지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셨다"(요한 3,16). 하느님 자신이 인간의 고통을 함께 나누신다는 사실과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전 인류의 고통, 우리 매일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신다는 사실을 알때 비로소 그리스도교 신앙이 싹트게 된다.
6. 대사제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대사제이시다(히브 4,14). 그리스도께서는 공생활 중에 가르치시고, 죄를 사하시고, 성화하는 사제의 활동을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완전한 제사를 봉헌하심으로써 우리를 위해 영원한 구원을 이룩하셨으며, 이전의 계약과 사제직을 성취하셨다.(히브9,1-10),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제로서 십자가 위에서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기꺼이 바치셨다. 그리스도의 전 생애가 성부께 드리는 제물이었다.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섬기로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마르 10,45)오신 주님의 사명을 표현한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요한 10,17). 사제로서 그 직무를 수행하실 때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의 대표자로서 성부 앞에 서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수난은 화해의 활동이다. 그리스도께서 사랑으로 인간의 죄를 위해 속죄하셨으므로, 죄로 조성되었던 온갖 분열과 적개심도 해소하실 수 있었다. 죄는 인간 소외의 가장 깊은 뿌리이고, 인간을 하느님에게서 갈라놓는다(에페 2,13). 죄는 사람들 사이에 불화와 적의를 조성하고, 개개인 안에 내적인 쓸쓸함과 비합리적인 생각을 일으키며(러미 8,23-24), 온 우주와 죄인이 관계도 어색하게 하므로, 죄인은 세상 안에서 이방인이 된다(창세 3,17-19)
7. 그리스도를 따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속하셨으나 우리는 이 지상 생활 가운데 예수님의 구속 사업을 완성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리스도인답게 산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여기 그 예를 적어본다.
- 예수님을 따르는 일
-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도록 우리를 가로막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일
-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
- 예수님의 선포 내용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선포하는 것
- 예수님의 약속에 희망을 거는 것
- 예수님께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불쌍한 이들을 위하여 일하신 것처럼 우리 자신도 그들의 해방에 투신하는 일
- 예수님처럼 성령 안에서 성부와 친교를 나누며 기쁘게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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