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Letter

친애하는 공지철님께5 2024/10/09 15:57:11

이옥수2024 2024. 12. 7. 17:08

지철님 제가 하루에 두번이나 편지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걱정되서 다시 왔어요.

 

제 생각만 하고 지철님이 제 편지들을 어떻게 읽으실지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생각해보니 지철님은 언젠가 카페에 들어오셔서 

제 편지들을 최근 것부터 거꾸로 시간역순으로 

읽어가실텐데 저에 대한 배경지식도 없이 왠

모르는 애가 어느날 갑자기 툭 튀어나오서는 

우주가 어떻네 은하수가 어떻네 상처가 어떻네

궁금하지도 않은 자기 인생 얘기를 주절거리고 있으니

좀 황당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니 많이 황당하실까요?

뭐 저런 여자애가 있어 그러면 어쩌지 갑자기 걱정되더라구요.

 

지철님 팬 분들도 제 글을 같이 읽으실텐데 속으로 웃기는

인간이라고 생각하진 않을까요? 지철님꼐 많은 속 얘기하고 싶어도

지철님 부담스러우실까봐 다 말씀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너무 죄송하더라구요.  상제가 아직 믿음이 없는 걸까요?

 

제가 이래요. 자기 생각에 빠져서 남 생각 안하고 있는 대로

퍼부어버리고 저는 옛날에는 제가 무척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어떤 면에서 남 생각 않는 이기적인 인간인 걸 깨달은 적이 있어요.

 

자기를 있는 그대로 남에게 두려움 없이 열어보이는 게 정말 어려운 

작업이네요. 상처받고 냉대받으며 다가가는거 이젠 별로 무섭지 않다고

어느정도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어휴 힘들다.

 

지철님이 제 머리속에서 하루 종일 계시니 제가 너무 현실을 잊고

오버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관계란 것도 어느 정도 현실의 땅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하는데. 지철님을 제 관념 속 세계에 가둬두고는

장난감처럼 어린애마냥 가지고 논 것은 아닌지.

 

지철님을 실제로 현실에서 만나면 어떨까 상상해보니 엄청 두려움이

엄습해와요. 지철님과 눈이 마주쳐서 지철님을 바라보는데 그 지철님의

존재가 너무도 낯설것 같거든요. 내가 아는 지철님 맞나. 제 편지들을

읽으셨건 저의 존재를 아시건 상관없이 너무도 이질적일 것 같아요.

 

이 현실과 관념의 세계의 갭을 어떻게 해야 해야 할까요.

현실에서 펄떡 펄떡 물고기처럼 살아 숨쉬는 지철님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현실에서는 겁이 너무 나서 엄청 쪽라들것 같은데.

제가 보기보다 무척 겁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아 모르겠다.

 

갑자기 우울해지네요. 걱정도 많고 겁도 많고 인정하기 싫은

제 모습을 마자칠 때마다 있는 그대로의 제 모습을 받아들이는 게

아직도 힘든 작업이에요.

 

근데 과거의 나는 제가 아닌거 아시죠. 이미 흘러가버린 시간 속에서

쓴 편지들도 이제는 제가 아니에요. 그때의 나는 그때의 나였고

순간순간 저의 존재라는 것이 변하더라고요. 어떠한 편견과 선입견

없이 이 순간 올곧게 서서 현재를 느끼고 있는 현재의 이 순간의

저만을, 모든 사람들이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왠지는 모르겠는데 갑자기 너무 슬프다.

 

관계라는 것이 항상 사람을 좀 슬프게 해요. 죽었다 깨도 다른

사람이 내가 될 수 없고 내가 다른 사람이 될 수 없고 아무리

교류하려고 노력하고 서로의 은하수가 스치는 순간이 있어도

서로의 세계는 너무 다르고 그렇더라고요.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인것 같아요.

나 혼자여도 그리 나쁘지 않으니 견디어 내야죠. 가끔 사람들과

합의점을 찾으면 그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해야 할 것 같고

그래요.

 

그래도 지철님한테 글을 쓰는 시간이 좋으니

가끔 우리 각자 합의점을 찾아가자구요. 서르의

다른 점을 협의하고 조정해나가면서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는 게 어른의 모습이니까요.

 

지철님의 평범함이 지철님에게 다가가는 걸 포기 못하게

하는 게 있어요. 관념의 세계속에서 끊임없이 지철님의

세계를 향해 쏘아올린 화살들이 현실의 세계에서

제게 다시 돌아와서 피투성이가 될 것 같긴한데

어쩌겠어요. 지철님이 좋고 이 시간이 좋은 걸 ㅎㅎㅎ

 

단순해지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모든 문제를 

일시에 해결해 주니까요.

 

하 휴일이 끝나가네.

 

근데 지철님은 언제 제 머리 속에서 떠나실 예정이신지.

며칠은 괜찮았는데 내 상태가 계속 이러면 어쩌나 조금

걱정이 되는데.

 

옆에 바싹 붙어 있지 않고 좀 떨어져 있는 것도 도움이

되던데. 그대가 옆에 있어도 난 그대가 그립다라는

싯귀절이 있지만, 지철님이 좋은데도 별로 보고 싶거나

그립지 않은 게 너무 하루종일 붙어 있어서 그런 것

같고. ㅎㅎ

제가 좀 그리워할 수 있게 좀 떨어져 있어 주세요, 아셨죠?

 

이번 편지는 좀 써내려가는게 힘드네요. 다시 기분이 좋아지면

도 올께요. 

안녕히 계세요.